8.6(목) 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 이사야 20:1-6
< 애굽을 그렇게나 믿었건만 >
블레셋의 아스돗은 앗수르를 막기 위해 애굽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애굽은 배신한다. 배신한 애굽도 후에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볼기를 드러낸 채 끌려간다. 이사야는 이러한 애굽의 결국을 보여주기 위해 상징행동으로 3년간 벌거벗은 몸으로 지낸다. 유다에게 애굽도 의지할 곳이 아님을 교훈하는 것이다.
1. 아스돗의 한탄
유다의 왼쪽에 있는 나라가 블레셋이다. 블레셋은 중요한 성읍 다섯이 있다. 그중 한 성읍이 아스돗이다. 아스돗은 애굽이 앗수르를 막아보자고 동맹제의를 했을 때 동참한다. 앗수르왕 사르곤은 이러한 아스돗을 괘심하게 여겨 무너뜨린다. 아스돗 왕은 애굽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자신도 공격받게 된 애굽은 아스돗 왕을 앗수르에게 넘겨주어 동맹을 배신한다. 아스돗은 애굽을 그렇게나 믿었건만, 한탄이 절로 나온다.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국제정세 속에서 꾀를 부리지 말자. 오직 여호와만 바라보자.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사 20:1)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사 20:6)
2. 유다야, 볼기를 드러낸 애굽을 의지하려느냐?
애굽은 아스돗과 동맹을 맺고서는 급해지자 동맹을 아무렇지 않게 깨버린다. 자신에게 피한 아스돗 왕을 앗수르 군대에게 내어주면 애굽을 잘 봐 줄줄 알았는가? 애굽도 포로로 잡혀 볼기를 드러낸 채 끌려가게 된다.
이러한 결국은 애굽의 외형적 모습만 보고 애굽을 의지하려는 유다에게 경종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게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 동안 지내도록 하여, 애굽과 구스가 이렇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믿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하는데, 유다는 어리석은 황소 같은 고집을 접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사 20:3-4)
3. 우리 삶에의 적용
이사야가 3년 동안 벗은 몸으로 지내는 일은 비록 예언행동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부끄러움을 감수한다.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의지하려는 어리석고 고집 센 행동을 돌이키지 않는다. 우리 같으면 한 주먹으로 ‘퍽’하고 응징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다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돌이키도록 반복해서 예언하신다. 이사야가 벗은 몸으로 3년간 지내도록 하는 충격적인 방법도 사용하신다. 죄인 유다가 징계는 받지만, 결코 완전히 망하지 않는 까닭이 있다. 택한 유다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부끄러움을 감수하려는 선지자의 열정 때문이다. 그래서 죄로 쓰러져야 할 유다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총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장대하게 보이는 것을 선택하여 피난처로 삼으려는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자. 하나님만을 신뢰하자. 그분의 예언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자.
댓글